돼! (헤롯왕 vs 하나님) 한글성경묵상(6): 유산, 이거면

본문 : 마태복음 2:15, 19-23 (개역개정, 영문은 NASB) 15. 헤롯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있으며, 이는 주인이 예언자를 통해 말하기를 애완으로부터 내 아들을 부른 것을 이루려 했기 때문에(호세아 11:1) 19. 헤롯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있으며, 이는 주인이 예언자를 통해 말하기를 애완으로부터 내 아들을 부른 것을 이루려 했기 때문에(호세아 11:1) 이스라엘에서 일어나 어머니 요셉에게로 하여금 일어나게 하고 어머니에게로 하여금 일어나게 하고 어머니에게로 하여금 20. 나사렛이라는 마을에 살고 있는데 이는 예언자로서 한 말에 나사렛인이라는 뜻을 담고자 했던 것이다.

돼! (헤롯왕 vs 하나님) 한글성경묵상(6): 유산, 이거면 1

© mccartyv, 출처 Pixabay, 아기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아타고에 은신해 있던 요셉에게 헤롯 왕(King Herod 혹은 Herod the Great)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알려주신 소식입니다.

왕좌를 지키려는 욕망을 분출한 예수님 탄생 당시 유대왕, 왕권에 대한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잔인한 사내아이 대학살까지 명령한 그 헤롯왕. 그러면 탐욕이 모든 것을 이루고 넘쳐흐를 만큼 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이미 가고 없고 죽음에 관한 소식만 전합니다.

인간의 끝은 아무리 강하고 화려해도 다 일반적입니다 짐승과 다름없다고 전도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나요?

전도서 3:19 인생이 당하는 것은 짐승에게도 당하는 것이니, 그들이 당하는 것이 보통이니 짐승이 죽음처럼 사람도 죽는 것이, 인간이 짐승보다 우월함은 모두가 헛일이다.

하지만 사실 헤롯은 죽기만 한 게 아닙니다.

역사를 보면 뭔가를 남겼죠 그것이 악행을 후대에 전수한 것입니다.

그 악의 전수를 통해 아이들도 권력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만큼 하나님의 사람들을 적대하고 박해합니다.

역사서에 따르면 아버지의 뒤를 이은 아켈라오(Herod Archelaus)는 아버지만큼이나 왕권욕이 강했습니다.

사실 그는 아버지 헤롯데왕이 다스리던 땅의 절반에 달하는 사마리아, 유대, 이 두 지방을 다스렸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왕(king)이라는 칭호는 자연 계승되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 황제에게 항소까지 합니다.

물론 그 소원은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요.

잔인한 헤롯 왕을 가장 닮은 아들은 아마도 신약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언급된 헤롯테 안티패스(Herod Antipas)가 아닐까 합니다.

그는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 (Herodias)와 결혼할 정도로 부도덕했어요. 이를 옳지 못한 것으로 여겨 꾸짖는 세례 요한을 투옥하고 결국 아내와 딸의 원한을 빌미로 참수하는 잔인함과 비열함도 갖추고 있습니다(마태복음 14:3-12). 자신까지 죽이려는 그를 예수님은 여우(누가 복음 13:31-32)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가 복음 13:31 – 32 바로 그때 어떤 바리새들이 나아가 말하기를 “여기를 떠나십시오.헤롯이 너를 죽이려 든다고 말하듯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말하고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으며 병을 고치고 셋째 날이면 완전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헤롯 안티패스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도 한몫을 합니다.

결국 빌라도 구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롱하다가 다시 그에게 돌려보낸 것입니다.

두사람은 예전엔 원수였지만 예수님의 처형을 위한 일로 친구가 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가 복음서 23: 11-12 헤롯이 군인들과 예수를 깔보고 희롱하던 옷을 입혀 빌라드로 되돌려 보냈으니 헤롯과 빌라드는 전에는 적이었지만 그날 친구가 되어라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은 헤롯 왕의 손자 헤롯 아그리파 1세에서도 확연합니다.

그는 예수의 제자 야고보를 처형하고 베드로를 가두는 등 예수의 사도를 강요했습니다(사도행전 12:1-2, 5).

사도행전 12:1-2 그때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안에서 몇몇 사람을 해치려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베어 죽이자

사도행전 12:5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해 간곡히 하느님께 기도했다

나쁜 행동은 하지만 절대로 신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결말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2장 23절이 헤롯 아그리파 1세의 죽음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도행전 12:23 헤롯이 영광을 신에게 바치지 않으니 신의 사자가 곧 치면 벌레에게 먹혀 죽는다

하늘도 모르고 솟아오른 오만과 오만의 결과는 이 허무하고도 끔찍한 죽음과 연이은 썩어빠졌습니다.

본문으로돌아가서악인의주변에있는사람도허무하게죽기는마찬가지죠. 마태복음 2:20절을 가리킵니다.

마태오 복음서 2:20기상하고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에 가서 아기의 목숨을 찾던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헤롯 왕뿐만 아니라 그의 명령에 따르고 아이의 목숨을 찾은 모든 사람이 같은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살아 생전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를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한편 신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된 것을 다 알지 않아서인지, 혹은인 롯데 왕에게 부끄러워할 우려가 여전히 있어서인지 요셉은 낮은 롯데의 뒤를 이어 유대, 사마리아, 이 두장 지방을 다스리는 아케라오이 있는 유대인에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런 그를 위해서, 하나님이 꿈을 통해서 가리라리에 가라는 지시를 줍니다.

마태오 복음서 2:22그러나 아케라오이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왕이 된 것을 듣고 거기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꿈의 지시를 받아 가리 라리 지방에 다니며

여기로 지시를 내린다는 표현은 원어로 쿠 레마티ー 조(chrāmatiz,)에서 “be revealed”,”be warned”, 즉 하나님의(주의성)메시지의 전달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Swanson, 1997). 하나님도 이처럼 이끌린 것을 보면 또 과거에 롯데 왕의 남자, 대학살의 전에 미리 아타고에 몸 담았던 점을 감안하면 요셉을 느낀 두려움은 허상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꼭 큰 위험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위험이 왔을 때 더 빛을 발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헤롯이 죽은 뒤 신이 요셉 집안을 애완의 부름을 장면에서 잠적했던 때와 같은 사랑을 느낍니다.

동시에 이곳에 나타나는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일에 관한 예언인 호세아 11장 1절을 봅시다.

호세아 11:1이스라엘이 어릴 때 내가 사랑하고 제 아들을 애완에서 불러냈으니 Hosea11:1WhenIsraelwasayouthIlovedhim, AndoutofEgyptIcalledMyson.

“제 아들을 애완에서 불러낸 것이다”이 부분에서 단수로 적힌 “아들”, 즉 예수가 신의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자신의 아들만 사랑하는 신이 없습니다.

이 구절의 앞을 보면, 한 덩어리로서의 「이스라엘」도 똑같이 사랑해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 11:1 “이스라엘이 어릴 때 내가 사랑해”

그렇죠. 아들만 애완견에서 호출한 게 아니에요.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BC 1900년경) 기근으로 고통받는 야곱의 가정 또한 아타고로 인도하였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조셉이 총리가 되어있던 그 땅에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가 늘고 강성해졌는데, 시대가 바뀌어 노예로 혹사당하자 신이 모세를 사용하여 그들을 출애경하게 합니다.

모세에게 내린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이 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가 밝혀집니다.

제4장 22절을 볼까요?

출 4:22 넌 바로에게 말하는 여호와의 말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잘라 Exodus 4:22 (NASB95) “Then you shall say to Pharaoh, “Thus says the LORD,”Israel

하나님께도 친아들 예수님이 계시는데 이스라엘을 “내 아들 장자”라고까지 합니다.

하지만 맏아들이 맏아들 역할을 하려면 믿음직한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전 성장기에는 하느님 마음이 얼마나 부모 마음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성장기, 그 어린 시절이 호세아 11장 1절 첫머리에서 말하는 시기, 즉 이스라엘이 애차에 있었을 때입니다.

그 소년, 맏아들 이스라엘이 고통스러운 노예 생활 속에서 신에게 외치는데, 신이 어떻게 응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장자에 대한 사랑으로 그가 한 일을 신명기 26장 7-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신명기 26:7-8우리가 우리 조상의 신 여호와에 주창하자 여호와가 우리 목소리가 들리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고야훼가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고 Deuteronomy 26:7– 8’Then we cried to the LORD, the God of our fathers, and the LORD heard our voice and saw our affliction and our toil and our oppression;and the LORD brought us out of Egypt with a mighty hand and an outstretched arm and with great terror and with signs and wonders;

하나님은 당연히 아들 예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똑같이 사랑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사랑했어요. 애처로운 이스라엘을 위해, 또 장자, 이스라엘을 통해 구원할 수 있는 더 많은 아들들을 위해 친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또 가까이 하는 것이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2:10 따라서 만물이 그를 위해, 또 그로 인한 사람이 많은 아들들을 이끌고 영광에 들어가게 하는 일에 그들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해 완전히 속셈이 합병하였으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줄애굽은 고난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의 죽음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아들 예수님이 섭섭해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이미 알고 순종으로 가신 분이었으니까요. 그는 아버지가 말한 사랑을 그대로 두고 싶은 분이었어요.

요한복음서 5:19 그러므로 예수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진실로 진정으로 너희들에게 아뢰리라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으니 … 아버지가 행해지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함께 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냐구요?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생각은 이사야 서저자의 말로는 이렇습니다.

이사야 42: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비추어 갇힌 자를 감옥에서 끌어내고 흑암에 앉아 있는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자.

예수님은 불쌍해 보이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공사 중 아버지의 사랑으로 행하십니다.

마태복음 9:35 – 36 예수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다니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고, 천국의 복음을 전하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